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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이야기

파스타만큼 한국 사람들의 해외 음식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MZ세대의 입장에서는 태어났을 때부터 옆에 있었던 존재다. 그러다보니 한국에 언제 들어왔냐 어떻게 한국 사람의 옆에 양식하면 떠오르는 존재로 자리잡게 되었냐는 잘 모른다. 조사해보면 나오겠지만, 그렇게 조사해봤자 실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만큼 느낌이 오지도 않을테고. 뭐 대충 미군부대 아닐까 하고 얼버무리고 끝~ 생각해보니 미군과 스파게티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긴 하지만 그건 너무 아웃오브토픽이니까 패스

하지만 오뚜기 스파게티에서 IGP 파스타까지 변화하는 과정은 보았다. 비단 파스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음식에서도 비슷한 변화를 볼 수 있었는데, 그냥 파스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리고 탄수화물은 즐거우니까!


미트소스 스파게티

어린시절부터 내 곁을 함께한 파스타는 당연히 미트소스 스파게티이다.

토마토의 글루탐산, 고기의 이노신산, 버섯의 구아닐산, 그리고 탄수화물까지 즐거운 요소들만 가득한 미트소스 스파게티를 사랑하는 건 당연하다.

먼저 수다날을 책임졌던 급식 스파게티. 꼭 저기에 크림스프랑 마늘빵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ㅋㅋ 피클도 같이 나왔던 거 같기도 하고. 스파게티 나오면 무조건 한번 더 받았었는데... 나는 급식 GOAT를 뽑자면 단언 이 미트소스 스파게티를 뽑고 싶다. 갠적으로 급식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사람으로서(다녔던 학교들 급식이 맛있었던 건지 모르겠는데 급식 맛없어! 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맛있는 급식을 얘기하자면 할 말은 많지만, 부동의 1위는 미트소스 스파게티가 아닐까 ㅋㅋ 이 맛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라구를 끓이는데 이 맛 근처도 못 간다. 샐러리를 빼고 토마토랑 마늘을 좀 많이 넣어봐야 할 거 같기도.

그리고 피자집 오븐 스파게티. 나는 이게 참 좋다. 어렸을 때는 몰랐었는데 커서 보니 한입거리 주제에 8000원 이러는 은근 비싼 친구였지만, 그래도 꼭 시킨다. 그 가장자리에 눌어붙은 면들이 누룽지 느낌나서 맛있기도 하고, 소스 자체도 맛있고 토핑도 많아서 좋다. 신기하게 이건 한국에서만 봤다. 유럽에서는 미국식 피자를 먹을 일이 없었고 (진짜 무지무지 먹고 싶었다!!!) 미국에서는 Marinara랑 Alfredo pasta만 있다. 면도 펜네. 미국 피자집의 사이드 국룰은 윙이다. 솔직히 아직 맛있는 피자집 윙은 못 먹어봤는데 종류도 엄청 다양하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룰인 거 같다. 여튼 스을쩍 검색해봤는데 일본에도 없는 듯? 피자집서 오븐스파게티 파는 나라 알면 댓글 달아주세요 ㅎㅎ

나에게 또 빼놓을 수 없는 건 엄마의 스파게티이다. 사실 엄마표라고 하기에는 청정원 표가 맞지 않을까 싶긴 한데 아무튼 엄마가 해주면 엄마표다.

그냥 여기에 야채랑 고기 다져서 건더기만 더 추가한 건데 너무나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집은 맞벌이었고 나는 할머니 손에서 컸다. 할머니 덕에 "맛"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긴 했지만(나중에 이 이야기도 따로 해보고 싶다), 어린이 입장에서 밋밋한 한식 집밥만 먹다가 저런 거 한번 맛보면 혀에서 춤추는 글루탐산과 이노신산 덕에 뇌에 깊게 박힐 수밖에 없을거다. 본론으로 돌아와, 주말에 엄마가 집에 있으면 간간히 한번씩 해주셨는데 진짜 한 솥을 동생과 싹싹 긁어먹은 기억이 가득하다. 여유있는 주말에 집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엄마가 해주시는 스파게티를 한 솥 먹는 이런 가족의 즐거움이 생각나는 스파게티다.

이런 미트소스 스파게티의 면은 항상 불어터져 있었다. 대량생산용 테플론 틀에서 찍어내고 고온으로 말려버린 한마디로 "오뚜기 면" 을 삶고 한두시간 뒤 서빙. 요리를 몰라도 다들 알 덴테는 아는 지금이지만, 그 때 알 덴테 하면 정말 너 요잘알이구나! 하지 않았을까? 근데 이 불어터진 면이 참 너무 잘 어울린다. 사실 오히려 불어터져 있었기에 급식에 나온 스파게티 후루룩 흡입하고 축구하러 가고 그럴 수 있었을지도. 좋은 면 알 덴테로 삶아서 먹으면 아마 씹느라 한 세월 걸렸을거다.

딱 이 포지션에 있는게 일본에서의 나폴리탄인거 같다. 나무위키 보니까 나폴리탄은 무조건 불어터진 면으로 해야한다는 사람도 있다더라. 누군가는 급식 스파게티를 나폴리탄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난 전혀 맛이 다르던데. 나폴리탄과 가장 근접한 맛은 오뚜기 콕콕콕콕 스파게티. 이게 진짜 케찹맛 찐한 나폴리탄이지~ 이 스파게티 라면이 호불호가 좀 많이 갈리는데, 어렸을 때 건강에 안 좋다고 컵라면을 쳐다도 못 보다가 명절때 사촌형과 피시방가서 먹었던 스파게티는 아직도 잊지 못하는 맛이다.

여담이지만 나폴리탄 만들때 케찹이랑 같이 스리라차 넣으면 너어무 잘 어울린다. 꼭 해보세요.


K-파스타

그리고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때 한국식 파스타들을 처음 접해봤었다. 내가 아는 스파게티는 미트소스 스파게티밖에 없었는데 패밀리레스토랑 이런데 가면 크림스파게티도 있었고. 이 때 까르보나라 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보았다. 친구가 "엄마가 해준 까르보나라 파스타가 정말 맛있어!"라고 자랑하는데 난 "까르보나라..? 그게 뭐야..?"라고 대답했었거든.

당연히 이때의 까르보나라는 베이컨에 크림 넣어서 만든 파스타. 사실 알프레도랑 정확히 뭐가 다른지도 잘 모르겠다. 미국식 알프레도는 생크림/버터+치즈 로 맛을 내는데 이 미국식 까르보나라는 여기에 계란 노른자(들어가긴 하나?) 정도 들어간 거 같고... 그러다보니 유튜브같은 걸로 본토 까르보나라(이것도 이야깃거리가 좀 있긴한데)가 전해지기 전까지는 까르보나라 == 크림파스타 정도였다.

또 뭔가 기억나는 점은 이때 "파스타"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그렇지만 스파게티 말고 다른 면 쓰는 건 잘 못보긴 했는데 ㅋㅋㅋ 이 때 기억나는 건 "스파게티"는 급식에서나 등장할 거 같은 단어였고, "파스타"는 좀 좋은 식당에서 등장하는 단어라는 느낌이었다. 파스타 하면 고급 고급 이런 느낌? ㅋㅋㅋㅋㅋ 이 때 즈음 미국에 한번 가게 되었는데 비행기 기내식으로 펜네 파스타가 나왔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파스타 == 스파게티 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연히 이걸 골랐었는데, 고기도 안들가서 밍밍한 마리나라 소스에 비벼진 펜네는 참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제비도 별로 안 좋아했는데 듀럼 밀로 만든 수제비같이 생겨가지고.

너는 뭐니

그래서 지금도 펜네는 손이 잘 안 간다. 요 근래 최애면은 리가토니인데도 ㅋㅋ 직각으로 자른 건 좋지만 비스듬히 자른 건 싫어!

각설하고 K 파스타들은 참 맛있었다. 뽀모도로라고 단순히 토마토만 들어간 게 아니라 굴소스도 들어가고~ 치킨스톡도 들어가고~ 별거 별거 다 넣고, 소스 또한 때려부어서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될 정도로 서빙. 그래서 보통 같이 주는 마늘빵으로 긁어먹고 그랬던 거 같은데. 조금 돈 더 내면 새우랑 홍합도 넣고, 아라비아따 시키면 매콤칼칼한게 딱 한국인 정서에 맞는 해물탕스파게티 ㅋㅋ Authentic하지는 않지만 이걸 맛없다고 할 한국 사람은 없지 않을까 ㅋㅋ

또 K 파스타하면 빠질 수 없는게 빠네 파스타 아닐까. Pane Pasta 가 이탈리아어로 문법이 맞아 보이지도 않긴 한데, 여튼 빵파스타이다. (번역이라고 하기도 뭐한게 빵도 Pane랑 비슷한 어원일 pānis 에서 왔고, 파스타는 pasta고) 한국말로 해도 이상하잖아. 돌솥비빔밥이라던지 바지락칼국수던지 명사+명사가 오는 음식은 많긴한데 주식+주식인 빵파스타 같은 느낌의 단어는 생각이 안 난다.

이런 빵 파스타는 미국에서 나온 듯 하다. Bread bowl pasta 검색하면 무지하게 많은 결과가 나온다. 사실 뭔가 근본 없어 보이는 음식이면 대부분 미국이더라. 맛 없어 보이면 영국 근본 없어 보이면 미국 이런 느낌? ㅋㅋㅋㅋ 당연하게도 이탈리아 사람들은 극혐하고, 빵이 단지 그릇으로 쓰이는 걸 본 제빵사들도 슬퍼하드라고

근데 이 빠네 파스타는 한국에서 파스타의 역할을 정말 충실히 수행했다. 비일상성. 이때의 파스타는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 포지션이었다. 요새야 파스타 요리법도 많이 보급되고, 저가 파스타도 많아졌지만 저 때는 짜장면 4천원 하는데 뽀모도로 만원부터 시작하고 그랬던 거 같다. 그냥 적당히 점심 저녁 때우는 일상 속 음식이 아니라 비일상적인 날에 비일상적인 분위기를 즐기는 곳이었지.


알리오 올리오

알리오 올리오를 접하기 전 까지만 해도 내게 파스타는 토마토/크림 2지선다였다. 까르보나라, 먹물 등 사파(?)가 있긴 했지만 그 또한 크림의 영역이었고. 하지만 우연히 엄마 따라 간 식당에서 봉골레를 먹었나 알리오올리오를 먹었나 하여튼 오일파스타를 먹었는데 내게는 혁신이었다. 그전까지 봤던 토마토/크림소스에 비해 그냥 "기름"이라 소스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은 친구였지만, 입에 착착 붙어서 쭉쭉 들어가더라.

Gemini의 말로는 드라마 <파스타>로 인해 알리오올리오와 봉골레가 유명해졌다고 한다. 나무위키도 똑같은 말 하니 (나무위키를 학습한 거 같긴 하지만) 그런가보다~ 나는 파스타 다 커서 유튜브 숏츠로 본 게 다라서 잘 모름.

여튼간 그 때 보았던 기름국 알리오올리오 사진을 찾아보려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이제는 안보이네. 요새는 알리오올리오 국물 생기면 바로 유튜브 댓글 난리나니까 그런가보다. 그 "알리오 올리오"도 Authentic과는 거리가 좀 있긴 한 K 파스타다. 만개의 레시피 등에서 알리오 올리오 레시피를 본다면 aglio olio e peperoncino 가 아닌 aglio olio peperoncino e gamberi와 같이 새우를 얹어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고, 소스 자체도 치킨 스톡과 파마산이 들어가기도 하는 등 자극적인 맛이 가득한 소스가 많이 보인다. 또한 마늘의 양도 다르다. 편마늘 왕창 넣어서 감바스 알 아히요를 보는 듯한 알리오 올리오.

구글 검색 : 알리오 올리오 레시피 - 캡쳐. 치킨스톡 / 파마산치즈 / 새우 등의 재료가 확인 가능하다

이러한 K 알리오 올리오였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내 입맛의 지평선을 여는 데에는 충분했다. 또한 토마토/크림과 같이 심플(?)한 이름 사이에 "알리오 올리오 에 페페론치노"와 같이 이탈리아어가 들어가버리니 한 단계 업 되는 느낌 ㅋㅋ 저 이후부터 난 뽀모도로가 토마토였구나... 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코로나19 이전에는 대중들은 파스타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던 거 같다. 나 또한 식객을 전권 5회독을 했으면 했지, 마르케지에 대해 찾아보거나 음식과 요리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DC인사이드 양식 갤러리를 보자. 전문적인 검색 툴이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 상 그냥 적당히 기웃거려 보기만 했다. 내가 대충 5분 기웃거려본 결과 코로나19 전에는 요리사를 꿈꾸는 사람들의 진로 고민 글 대부분 + 다양한 파스타 글이 대부분이다.

정통 까르보나라 - 2016년 양식 갤러리

이 2016년 글을 보면 알겠지만,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결점 덩어리다. 1. 베이컨- 그마저도 앞다리살 베이컨 -> 관찰레의 향신료 풍미를 차치하고, 현대 까르보나라는 기름이 필수적인 요소인데 저건 기름이 안 나옴... 2. 계란의 온도와 면 코팅 -> 계란 온도를 올려 계란이 가진 점성을 극대화해 점도를 잡는 것이 현대 까르보나라인데 사진에서 보면 계란 온도를 전혀 안 올렸는지 점성 자체가 없음. 3. 면. 딱 봐도 마트 면. 4. 위에 올린 파마산.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도, 페코리노도 아님.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이 두 치즈 저렇게 가루로 안 팖. 오직 파마산치즈만 가루로 팖)

하지만 이 글은 무려 추천도 하나 받고 댓글도 "맞는 말이다"의 뉘앙스. 코로나 이후 이렇게 글 올리면 톡식한 디시 특성상 아마 어마어마한 악플이 달렸을 텐데 ㅋㅋㅋㅋ 날계란 탕이니 뭐니 하며

이 사이를 메꾸어 준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집 안에서의 요리붐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내게는 김밀란 유튜브가 가장 크게 다가왔다. 코로나19시절 집에서 시간이 많으니 요리를 하는데, 가장 접근성이 좋은 건 파스타만한 게 없거든. 프랑스 요리를 생각해보자. Tres rapide et facile (빠르고 쉬워요)로 시작한다. 하지만, 6 heures cuision (6시간 끓이세요)로 끝나버리는데 참 따라하기 쉽다. 뵈프 부르기뇽을 생각해보자. 그 소고기가 부드러워지도록 끓이려면 압력솥이 있어도 30분은 끓여야 하고, 없으면 3시간 4시간 금방 간다. 그리고 그동안 소스도 만들어야 하고. Haute Cuisine 그 자체가 그래서. 궁금하면 이 아재 영상 한번 봐보세요. 프랑스어 공부도 가능

https://www.youtube.com/@ChefEtchebest

물론 파스타도 볼로냐 라구나 비스크 소스 이런거 만들면 몇 시간 기본이긴 하지만, 그래서 알리오올리오와 로마 파스타들(까르보나라 아마트리치아나 카쵸에페페 그리치아)이 주목받았다. 때마침 소금집에서 관찰레도 팔아버려서 한국에서 관찰레를 구할 수 있게 되었기도 하고. 거기에 "너희가 알던 파스타는 파스타가 아니다" 식의 김밀란/파브리 등 이탈리안 파인다이닝 쉐프들의 유튜브 시작!

그리고 가장 먼저 발생한 변화는 "만테까레"도 있지만, 면의 재발견이라고 생각한다. bronze cut? 이거 코로나 전에 한국에서 쓰이기나 했을까? 다 오뚜기 면 쓰고 바릴라 면 쓰고 그랬지. 면 구분은 눈으로 보면 딱 보인다. 유튜버가 "하얀 가루 붙은 거 사세요!" 하면 바로 "하얀 가루"보고 집을 수 있다. 또한 맛도 천지 차이다! 오뚜기 면과 데체코 면. 전분이 가득 있는 면수 때문에 발생하는 소스는 둘째치고, 면 자체만으로 텍스쳐도 다르고 조금 불었을 때 맛도 다르고 아예 다른 음식이다.

De Cecco

여담으로 그 다음 단계의 건면들 또한 맛이 완전히 다르다. 한국에서도 이제 많이 볼 수 있는 젠틸레나 만치니, 루스티켈라, 라파브리카 같은 면들 먹어보면 너무 맛있거든. 물론 그 돈 (500그램 한 봉 만 원 이상)을 지불하고 먹을만한가? 에 대해서는 개개인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탄수화물의 소중함을 너무나도 느끼는 내게는 충분히 지불할 만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차이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온에서 장시간 건조가 가장 크다. Bronze Cut은 너무나도 흔하지만, 저온에서 장시간 건조는 생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에 비싼가보다. 이러한 저온 장시간 건조 파스타의 가장 큰 특징은 휘어져 있는 윗면이다. 건조대에 걸려 건조시키다보니 저렇게 건조대에 걸린 자국이 자연히 생긴다. 면도 길어서 재밌기도 하고.

la fabbrica della pasta di gragnano spaghetti

사진 속 파스타는 라파브리카인데,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건면 IGP(지리적표시제) 인증을 받은 그라냐노 지방의 파스타이다. IGP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the exclusive use of durum wheat semolina and water from local sources; extrusion through bronze dies; drying at temperatures between 40 and 80°C for a period ranging from 6 to 60 hours in static chambers or in warm air tunnels; packaging within 24 hours in the place of production." 출처: https://pastificiodeicampi.it/en/gragnano-city-of-igp-pasta/

즉 로컬 듀럼 밀+물, 40-80도 사이에서 건조, 6-60시간 건조, 생산 후 24시간 이내 포장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40-80도나 6-60시간은 너무 범위가 크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믿고 먹는 것처럼 충분히 믿고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당연히 "지리적표시제"이기에 다른 지방에서 아무리 잘 만들어도 저 딱지 못 받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저 딱지 없으면 별로다!는 아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특성상 소규모 브랜드 파스타들 중에 맛있는 파스타들이 엄청 많기도 하고. 하지만 기준이 명확히 없다보니 가격대 보고, 직접 맛 보고 판별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계지만.

본론으로 돌아와 코로나 이후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이때즈음부터 전 세계적으로 "파스타 경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름국수 알리오올리오는 틀렸어! 크림 까르보나라는 틀렸어! 물론 그 중에 진짜 "틀린" 것들도 있긴 하다. 한국인 입장에서도 김치찌개가 서양 사람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마요네즈를 섞어버리고 그러면 "이건 쫌..."할 거 아니야 ㅋㅋ 거기에 관광업이 어마어마하게 큰 이탈리아 특성상 Tourist Trap들도 잔뜩 있고.


전통? 근본? 과연?

하지만 이 전통과 근본 또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진짜 알리오 올리오? 진짜 까르보나라? 과연 무엇일까?

먼저 이 영상을 보자.

이탈리아 파인 다이닝 알리오 올리오이다. 마늘은 한번 데치고 갈아서 형체가 없고. 면수 또한 들어가지도 않았다. 소스의 점도는 마늘을 갈면서 블렌더로 잡아버렸다. 만테까레 과정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알리오 올리오 레시피와 완전히 다르다.

미뇨끼 유튜브에서 나오는 알리오 올리오 또한 전혀 크리미하지 않고 기름 범벅 알리오올리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 어떤 것이 진짜인가??? 인터넷 알리오올리오 경찰들에게는 둘 다 사파인데.
과연 정답이 있을까?

까르보나라도 마찬가지. 까르보나라 = 근본 로마 파스타 같다.
현대 까르보나라:
계란 + 로마노 치즈 + 관찰레 + 후추, 마지막에 계란 소스 가열해 82도에서 점도 잡아 완성.
크림 - 사파

하지만, 까르보나라는 발명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Ada Boni의 1930년 로마 요리책 La cucina romana에는 까르보나라가 없다. Cacio e pepe, gricia, amatriciana는 있는데 까르보나라는 없다. -> ????

최초의 까르보나라 레시피는 시카고에서 출판되었다 -> ???? https://www.ricettestoriche.it/2018/03/11/la-storia-della-carbonara-capitolo-2-gli-esordi-1951-1960/

1954년 이탈리아 최초 레시피는 지금과 완전 다르다 -> La Cucina Italiana 1954년 8월호에 실린 최초의 이탈리아 레시피 재료: 스파게티 400g, 판체타 150g, 그뤼에르 치즈 100g, 마늘 한 쪽, 계란 2개, 소금, 후추 -> ?????

그래서 가장 유력한 해석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 보급품에서 나왔다는 것. 보급 계란 보급 크림 보급 베이컨 -> 섞자. https://www.gamberorossointernational.com/news/carbonara-history-origins-and-anecdotes-of-a-legendary-recipe-2/

관찰레는 1960년 경에나 등장하고, 그 당시 레시피는 생크림이 잔뜩 들어간다.

괄티에로 마르케지의 1989년대 레시피: recommends a quarter of a liter of heavy cream on 400 g of spaghetti -> ????

그럼 이제 누가 사파지? ㅋㅋ


변화하는 K 파스타와 진짜 K 파스타

요새 배민 켜서 파스타 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애들은 삼겹살 파스타 로제 파스타 투움바 파스타 이런 친구들인 거 같다. 예전에는 토마토 /크림 2지선다였던 거 같은데. 물론 난 지금 미국이라 2년 전 한국에 있을 때 정보들이기에 지금은 또 다를수도? 여튼간 K파스타도 변화한다!

하이엔드 파스타도 정통성을 중시하지만 비일상성을 보여주기 위해 파스타 바 등에서 생면 파스타를 강조하는 거 같다. 생면 타야린 유행도 있기도 했고. 근데 생면 >> 건면 하지말고 각자의 매력이 다 있으니 둘 다 사랑해주자. 건면의 알 덴테 생면에서는 절대 못 본다.

투움바 파스타 또한 기원이 신기한데 아웃백에서 만들어진 메뉴고 투움바라는 호주 도시 이름을 따 붙였지만 저 도시랑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파스타이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미국 본토에서 시작되었지만, 미국에서는 정작 단종되고 매운 거 좋아하는 한국에서 인기 메뉴가 되었다고.

삼겹살 파스타도 따지고 보면 파스타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 삼겹살 기름과 면수의 유화!

나는 이런 친구들도 K파스타, 근본없다 라고 욕하지말고 같이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당연히 "정통 파스타"에요 하고 대접하는 건 제이미 올리버의 한국식 볶음밥을 생각나게 만들지만.

(이건 그냥 문화에 대한 존중이 없는 요리이니 맛을 떠나 보고 욕하고 가시면 됨)

여튼간 알리오올리오니 까르보나라니 걔네도 근본 없는 건 마찬가지인데 우리 친구들도 품어주자. 당연히 저런 배달 파스타는 싸구려 면 쓰고 그래서 재료 퀄리티로서의 한계도 있고 예산만 더 있다면 더 보완할 수 있는 점들도 많지만 일단 맛있잖아~

한국 음식 또한 근본있어 보이지만 없는 음식들도 많다. 1950년대 등장한 아구찜, 부대찌개 뿐만 아니라, 현대 배추김치 또한 100년 되었을까? 삼겹살 구이는 1980년대나 되어야 등장하고. 당장 라면만 봐도 우리는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점점 시대가 지날수록 매워지기도 하고, 우지라면 같은 이야기들도 생기고, 아예 다른 음식이 되어간다고 생각한다.

또 나는 파스타 하면 짜장면이 떠오른다. 무려 생면 파스타의 문법을 제대로 따르는 K파스타 ㅋㅋ 제대로 된 짜장 만들기 참 어렵다. 양파 잘 볶고 고기 잘 볶고 춘장 잘 넣고. 간짜장은 더욱 더 어렵다. 채수가 나오기 전에 서빙. 전분 넣으면 사파? (이 또한 이야기하면 재미있는 주제)등. 이런 고오급 요리를 우리는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먹는 게 양심에 찔릴 정도. 그래서 요새 제대로 된 중국집이 없는 걸수도 있다. 백반집 국밥집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가듯 제대로 만들면 단가가 안 나오니까! 사람들 눈도 엄청 높고.

마포구 은하장

이렇게 소중한 짜장면 잘 좀 지켜줬으면 좋겠다...

이제 글을 끝낼 때가 되었는데 좀 이야기가 이리저리 많이 새서 글을 다시 맺자면,

맛있는 거 소중히 다뤄주었으면 좋겠고, 개인적으로 음식에 국수주의를 넣거나 극단적 정통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1954년 이탈리아 최초 까르보나라에는 그뤼에르 치즈가 들어갔다. 마르케지는 생크림을 쿼터리터 넣었다. 음식도 변하고, 그 나라에서만 발전되는 것도 아니고 여러 나라가 섞여 발전한다. 위 짜장면도 중국 작장면에서 유래되었고, 중화 음식으로 소비되지만 그렇다고 작장면보다 못한 열등품은 아니니까!